2007년 12월 3일 월요일
누가 성직자이고 누가 평신도인가?
성직자와 평신도 구분은 비 성경적이다
목회자는 '섬김받음이'가 아닌 섬김이
김삼
솔직히 털어 놓고 얘기해 보자.
성직자(clergy)와 평신도(laity)의 구분이 신약 성경에 단 한 번이라도 비쳐진 적이 있던가. 목회자만 성직이라면 장로나 집사는 세속직이란 말인가? 장로나 집사도 엄연히 성직 즉 거룩한 직책들이며 더구나 초기 교회에서는 목사도 감독/장로였다. 사역 은사의 하나인 목자들이 있었고.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복음주의권에서는 거의 제쳐 놓은 지 오래 된, 케케 묵고 한 물 간 개념이다. 주로, 카톨맄/정교회/성공회나 여태 전통을 끼고 사랑하는 신교 주류 교단에서 즐겨 쓰는 말들이다.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그 대신 '형제', '자매'란 말을 선호한다. 그 점에서 더욱 복음적이다.
미국의 많은 교인들이 '김 목사'보다 '브라더 킴'(김 형제님)이란 말을 좋아한다. 더 정답고 근접도가 높다. 심지어 공식 석상에서 자기 담임목사의 맨 이름(퍼스트네임)을 그냥 부르기도 한다. 언뜻 버릇 없어 보여도 더욱 친근한 화법이다. 그러다 보면 하나 되자고 하기도 전에 어느 새 하나가 되어 있다. 초기교회처럼 껴 안고 입 맞춰도 하등 부담이 안 간다.
미국 교회에서는 목사님(Pastor), 목회자님(Reverend), 사역자님(Minister)이란 용어를 쓸 때는 정도에 따라 상당히 공적인 명칭이다. 물론 동/서양 사고방식의 차이도 인정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신약 성경에 흔해 빠진 말이 '형제'요 '자매'다. 왜 흔한 말을 안 쓰고 일부러 어려운 명칭을 써 가며 호칭 때문에 피차 불필요하게 마음 쓸 필요가 있을까.
언제부터 우리네는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소릴 듣기를 그리도 좋아하게 됐나? 그러다 보니 교회나 교계에만 들어오면 은연 중 계급의식이 작용한다.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명칭 하나로 남과 차별화 된다. 그것이 그렇게도 자부심을 높여 주는가.
그래서 그런지 수시로 엄청난 에너지와 자원을 소모해 가면서 갖는 집사, 장로 임직식이 진급식 못지 않다. 하지만 파울은 페트로를 그냥 '케파'라고 불렀다. '케파 사도님', '요한 장로님', '스테판 집사님'이라고 거추장스럽게 직분명으로 겉치레를 하면서 호칭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김삼님'으로 족한 것이다.
스탕달의 소설 '적(赤)과 흑(黑)'에서 적은 성직자, 흑은 세속 법관을 암시한다고 한다. 카톨맄적 사고방식이다. '적'은 붉은 옷과 '어두관'(魚頭冠)으로 치장하기 좋아하는 사제 계급이다. 바티칸 사람들을 보면 실감이 갈 것이다.
성직자란 말은 사실 사제나 목사가 대접 받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 아니던가. 하지만 목사가 이 명칭으로 짐짓 사잇선을 그어놓고 스스로 앞가림 하려 든다면, 행동이 거룩하지 못할 때 이미 성직자란 명칭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무턱 대고 갖다 붙이는 '성직자'란 세 글자에 책임져야 할 소지는 없는가.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다 성도다. 믿는 그 자리에서, 거듭난 즉시로 성도 즉 거룩한 사람이라는 명칭과 개념을 성령님으로부터 부여 받는다. 그렇다면 성도와 성직자의 구분은 무엇인가? 거룩한 무리와 거룩한 직분자의 차이인가? 목사도 성도 가운데 있다. 목사도 성도가 아닌가.
'성직자'란 말은 쓰면 쓸수록 묘한 개념의 혼동만을 안겨 줄 뿐이다. 더구나 요즘 서구에서는 성직자(clergy)란 말을 기독교 계열은 물론 유대교/회교/불교계 인사들에게조차 사용하고 있으니 혼동이 더해 간다.
그리고..최초의 동성애 사제인 성공회 뉴햄프셔 대교구의 진 라빈슨 주교는 과연 성직자인가 아닌가? 제도상으로는 성직자인데 하나님 앞에선 성직자가 아니지 않은가? 일파만파 성추행으로 성당 헌금 갖고 요즘 배상금 내기 바쁜 카톨릭 사제들은 성직자인가, 아닌가? 명목상의 성직자들이지 실질상의 성직자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신교에서는 인정조차 않는 사제들이지만.
그러니..결국 성직자 제도가 하나님 앞에서 무용지물이란 얘기가 아닌가? 이 말은 사역자들을 하나님이 구별하여 불러 주시지 않았더거나 모든 성직을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 보겠다. 목회자(minister)는 사실 성도를 섬기는 자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주님은 죄인을 섬기러 땅에 내려오셨고 섬김의 본을 보이셨다. 목사가 어찌 그 이상을 바란단 말인가? 주님보다 더 대접받겠단 말인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던 물대야 속 물표면 위에 비친 땀방울 맺힌 주님의 섬김의 얼굴-그 이상을 넘어가서는, 섬기는 자가 되지 못한다.
딴 소리지만, 카톨맄은 죽은 교도 명사들에게 소위 '성인'(saints)이란 개념을 따로 창출해 쓴다. 주기적으로 추가 추대하여 받든다. 심지어 어떤 특정 성인을 '수호성인'으로 받들고 기도하고 중보해 달라고 요청도 한다.
도대체 어느 도깨비가 성인이란 말인가? 성인은 우리가 성인이다! 예수 믿고 거듭난 우리 모두가 성자(聖者)들이요 성인들, 성도들이다! 그런데도 모모 성인의 날입네, 만성절입네, 축성절입네 "씨나락 까 먹는" 소리들을 해 댄다. 성경대로 하면, 성 프란치스코 못지 않게 '성 김삼'인 것이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개념 구분은 다분히 구약적이다. 코라(고라)의 반역이후 사제 지파인 레비 족들을 다른 지파 형제들과 사이에 거리를 두고 구별 짓던 관습이 카톨맄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으로 둔갑한 것이다.
카톨맄은 그럴 만도 한 것이 중세 신학교와 수도원에서 수련과 연구에 골몰하던 사제들과 훗날 온 유럽을 뒤흔들기까지 콧대 높던 교황권과, 세속 군주들을 비롯한 일반인들을 철저히 구분하기 위해 그런 제도가 필요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상징이라도 하듯 대부분의 수도원과 구식 성당을 보면 벽이 높고 창문들은 위 쪽에 붙어 있다. 세속으로부터 자체를 차별화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과도 담을 쌓게 됐다. 대조적으로 주님은 늘 자연을 가까이 하셨다. 드높은 담장과 두터운 벽 너머 수도원에 맨 날 처박혀 그리스어, 라틴어 교육을 받고 신학 전문가가 된 그들과 라틴어를 제대로 못 알아 듣는 일반인들이 어떻게 구분돼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성경은 자기네 전유물인 양 끼고 있으면서 일반인들을 무식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유식한 자기네와 무식한 그들을 구분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두텁고 드높은 담벼락 너머 저편을 귀족화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세 성가대가 귀족화 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래서 기독교계에서는 언제부턴가 '성가대' 대신 찬양대란 용어가 상용화 됐다.
그래선지는 몰라도 '성직자'란 명칭에서는 거룩하고 구별된 느낌보다는 귀족적인 냄새가 더 난다. 차별화, 계급화 된 생경한 체취가 더 풍긴다. 목회자나 교인이나 똑같은 인간인데도 별종인 것처럼 느껴짐은 기자의 오산일까?
기독교가 이 구분과 차별화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잘못이다. 신교도 카톨맄처럼 신학교를 운영하니 역시 그럴 만 하다손 치더라도 명칭은 달라야 한다. 신학계를 구분하자면, 신학생, 신학도나 신학자와 신학계로 족하다. 신학교 출신이고 안수 받았다 해서 '성직자'라고, 신학교 출신이 아니라 해서 '평신도'라고 구분 지을 하등의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목회자는 특별한 소명이 있어야 하고 다년간 특별한 수련을 받아야 함은 사실이다.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서 맨 날 사회에서 세속 일을 주로 해야 하는 일반 교우들과 다를 수 있다. 그렇다해서 구태여 성직자란 명칭으로 앞가림 하려 들고 스스로 높일 순 없다. 성경은 장로들을 존경하되 잘 가르치는 장로들(목회자)을 배나 존중하라고 했다. 결국 그 차이인 것이다.
목사는 구약적 개념의 사제(제사장)도 대사제도 아니다. 페트로는 온 성도가 곧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말했다. 성도 모두가 곧 천국 귀족이요 왕족이요 사제들인 것이다.
덧붙이지만, 교우들은 '평신도'란 말로 자신을 '성직자'와 구태여 구분 지을 필요가 없다. 그런 개념과 용어가 필요하다면 '목회자', '성도' 굳이 구분하려면 '교우'들로 충분하다.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명칭만 철폐헀을 뿐더러 장로들이 직접 섬김에 앞장 선다. 바구니 들고 헌금 나르기, 안내하기, 장애교우 돌보기 등 거친 일, 뒷일들을 장로들이 도맡아 한다. 강단 가까이 높은 의자에 앉아 잰 체 하는 모습은 찾아 보기 힘들다. 단 행정 치리만은 사역자와 장로들이 중심이 된다.
하늘 보좌 앞에는 24장로석 외에 목사자리가 따로 없다. 성직자 좌석과 평신도 좌석이 구분돼 있지도 않다. 누가 성직자-거룩한 직분자인가? 교회의 직책들이 다 성직이다! 심지어 관리인(사찰), 사무원들도 성직이다. 누가 성도인가? 거듭난 너와 내가 다 성도다. 서로 섬기는 이들, 그들이 곧 성도요 교회다. 이 평등 원리부터 교회에 적용되지 않으면, 교회개혁은 한참 뒷걸음질일 수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성경을 본받아, 가급적 '김 형제님', '이 자매님'으로 서로를 호칭하면 어떨까? '김 목사님', '박 권사님', '이 장로님' 대신 말이다.
2007년 12월 1일 토요일
'아베 마리아', 타당한가?

김삼
'아베 마리아'라는 노래가 무척 많다. 가사는 하나이지만 중세로부터 현대 악파까지 다양한 작곡가들이 '성모'를 지극 정성으로 흠모하고 받드는 마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가락과 화음들을 갖다 붙여 놨다. 구노, 슈베르트 등의 곡이 가장 대표적이다. 구노는 맹랑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신교측 작곡가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곡을 훔쳐(?) 반주곡으로 갖다 붙였다. 슈베르트의 곡은 특히 화음 진행이 매혹적이어서 널리 불린다.
연전에 워싱턴내셔널대성당에서 거행된 레이건 전대통령 추모식전에서 한 테너의 독창으로 '아베 마리아'가 불려졌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추모식 전체순서와 담당자 플랜을 짠 사람은 고인의 부인인 낸시 레이건 여사였다고 한다. 워싱턴내셔널성당은 신교의 일파인 성공회 소속이지만 '국가정치 교회당'이랄 만한 곳이고, 고인도 형식 상의 신교도였다.
오래 전 필자가 사역하던 서울 서대문 근처 모 교회의 중고등학생 문예모임에서 시 낭송 배경 음악으로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가 현악으로 연주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미처 예상 못한 일이었기에 사후에 지도목사가 나와 "이런 음악 때문에 얼마나 수많은 신교도들이 죽어야 했는지 아느냐?"고 호통치며 한동안 엄한 훈계를 했다.
'아베 마리아'가 교회에서, 또는 정규 예배 시간에 연주될 수 있느냐를 묻기보다 가사내용 자체가 타당한 지를 묻고 싶다. '아베 마리아'는 성경적, 신학적, 교리적으로 맞는 음악일까? '아베 마리아'의 라틴어 가사를 보면 이렇다.
아베 마리아
그라티아 플레나
아베 도미누스 테쿰
베네딕타 투 인 물리에리부스
에트 베네딕투스 푸룩투스 벤트리스
투애 예수스
아베 마리아
마테르 데이(신모/'하느님의 어머니')
오라 프로 노비스 페카토리부스
눙크 에트 인 오라 모르티스 노스트리
아멘
옮겨 보면..
찬미, 마리아님
은총 가득하셔라
주님이 님과 함께
여인들 중 복되신 님이여
님의 태중의 열매가 복되십니다
거룩한 마리아님
하느님의 어머니
우리 죄인들 위해 기도해 주소서
지금 그리고 우리 죽음의 시간에
아멘
앞 부분은 루카복음서 1장에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장(대천사)의 인사말과 비슷하면서도, 그럴싸한 찬양시로 바꿔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또 엘리자벹이 마리아에게 한 말, 성전에서 시메온이 한 말 등을 적당히 짬뽕해 놓았다. 즉 카톨맄의 마리아 숭앙사상에 맞춰 그를 찬미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사경문이다.
그러나 가브리엘, 엘리자벹, 시메온 등은 결코 마리아 자신을 찬미하기 위해 이런 말들을 한 것이 아니었다. 가브리엘은 "샬롬, 은총 입은 분. 주님이 그대와 함께 하십니다..."란 인사말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을 뿐이다. 하지만 카톨맄은 이것을 "찬미합니다. 마리아"란 뜻으로 바꿔 버렸다.
2절은 그야 말로 가당치 않다. 마리아가 죄인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중보적 존재라고 누가 얘기했나? 죽는 시간에 마리아가 기도해 주면 지옥에서도 천국으로 옮겨지나? 성경 어디에 그런 말이 있나? 그러니, 카톨맄은 성경을 초월한 종교이다.
과연, 마리아는 우리의 찬미 대상일 수 있는가? 카톨맄에서는 6세기 때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마리아 숭배론(Mariology)을 구체적으로 교리화했다. 비단 마리아뿐 아니라 각종 성상과 성화, 천사들과 소위 성인(saints)들로 불리는 고인들까지 존숭하며 때로는 고인과 일종의 '대화'도 나눈다.
특히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성경엔 없는 '성모'라든지 '모후'(Our Lady), '신모', '모든 이들의 여왕' 따위로 부르며 예수 크리스토에 버금가는 중재자(mediatrix), 찬미의 대상으로 떠 받든다. 심지어 마리아를 무흠무죄하고 완전 순결한, 영원한 동정녀로 여긴다.
이 모두가 성경엔 없는 컨셉트다. 마리아는 육신적으로는 성령으로 예수 크리스토를 잉태하여 낳은 복된 여인이지만, 그 자신도 크리스토의 보혈 없이는 구속 받을 수 없는 평범한 죄인이었다가 거듭나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다. 심지어 예루살렘 초기교회 조차 마리아를 여성 지도자로 받들어 모시지 않았다. 다만 예수님의 가정에서는 주님의 동생 야코보가 교회 주요 지도자였고 동생 유다는 짧은 서신서를 기록했을 뿐.
요셉, 마리아는 부부 간 대화에 탐닉한 나머지 12살인 예수님을 잃어 사흘동안 찾아 헤매어야 했다. 마리아는 한때 예수님을 정신병자로 오인하기조차 했다. 더욱이 예수 크리스토 외에 최소한 6남매를 낳은 평범한 어머니였지 '영원한 동정녀'가 아니었다.
더 나아가, 성경은 하나님과 예수 크리스토 외에는 어떤 대상도 경배찬양의 대상일 수 없음을 밝혀준다. "찬양은 내 것이라"고 하나님 당신께서 못 박아 놓으셨다.
'아베 마리아'의 가사 내용처럼 마리아가 중재자/중보일 수 있는가? 성경은 우리의 중보는 오직 예수 크리스토와 그분의 영이신 성령님 뿐이심을 명명백백히 증언한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의 대상도 아버지 하나님과 유일한 하늘 대사제이신 예수 크리스토이실 뿐이다.
카톨맄에서는 교황이 '성인'으로 지정한 고인들은 물론 천사들까지도 중보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긴다. '사제'(priest)로 서품한 신부들까지도 고해성사를 받는 등 중재자 노릇을 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예수 크리스토의 유일한 중보 역할을 가로채는 행위다.
사제의 중보 역할은 구약시대로 이미 끝났다. 그러므로 카톨맄과 성공회, 정교회 등 일부 교파에서 쓰이는 '사제'란 용어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사실 상의 사제는 모든 거듭난 성도들이다. 우리 자신들이 왕 같은 사제들로, 예수 크리스토의 이름으로 직접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 간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마르틴 루터의 정신을 따라 '만성도사제(제사장)'설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리아 같은 또 다른 '중재자'가 따로 필요 없다.
셋째로, 마리아가 우리의 대화의 대상일 수 있는가? 성경은 죽은 자들과의 교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마리아의 영은 분명히 하늘에 가 있지만 그 몸은 아직 부활하지 못해 땅에 속해 있다. 휴거(들려올려짐) 때 그 몸이 영혼과 합해진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아직 죽은 자들 그룹에 속해 있다. 마리아가 승천했다는 기록도 성경에 전혀 없다.
고인과의 교제와 대화는 비성경적이다. 그러므로 고인이 된 조상에게 절을 하거나 예를 올리는 것도 잘못이다. 어떤 죽은 성인들도, 심지어 천사라 할지라도 우리의 대화의 대상은 아니다. 그리고 성인은 특별한 고인이 아니라 거듭난 우리 자신들이 성인들이다.
단, 천사들은 우리의 수발을 드는 존재이므로 꼭 필요한 명령을 내릴 수는 있다고 성경은 명시했다(히1:14).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아베 마리아'는 가사부터가 타당하지 못한 음악이다.
한국 부흥강사들의 허와 실

김삼
어느 교회 집회에 참석했다가 모처럼 "부흥강사 다운" 부흥강사를 봤다. 여기서 '부흥강사 다운..'이란 말은 전형적인 한국식 부흥강사를 뜻한다.
옛 약장수(?)를 연상시키는 굵직한 허스키보이스. 독특한 지방 사투리. 과히 듣기 싫지 않을 정도의 걸쭉한 입담-욕지거리와 반말. 기관포처럼 연발해 배꼽 잡을 새 없이 웃기는 유머. 과장된 제스처와 표정. 성경본문의 풍유적(allegorical) 해석, 은혜보다 현세적 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성향. 밑도 끝도 없이 아무데서나 아멘을 강요하는 것 등등.
물론 이런 것 때문에 그들 나름의 영적 체험과 경건, 선의까지 무시하려는 건 아니다. 이민생활에 밤낮 찌들린 동포들의 묵은 스트레스를 씻겨내리다시피 확 뚫어주는 시원하고 탁월한 말 재간과 유머감각 등도 다 좋다. 또 20세기 한국교회 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교회를 정신차리게 만들고 성도의 성령충만을 돕는 훌륭한 부흥강사들도 얼마든지 있었고 현재도 있다.
문제는 깊이다. 신학을 깡그리 무시하는 성경해석이 엉터리고, 감칠 맛 나는(?) 유머와 말발은 좋은데..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말이 아닌 능력에 있는" 영적 본질 즉 영성과 권능, 경건 등에서 약하다는 것이다. "말보다 능력"이어야 하는데, "능력보다는 말"이다.
한국 무슨 단체의 장이라는 최근의 그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를 들면 다짜고짜 "아브라함은 복을 전혀 못 받은 사람"으로 소개하는 게 아닌가. 마치 아브라함의 생애가 저주를 받은 것처럼 횡설수설을 해나가다가 "진짜 복 받은 사람은 야곱"이라며, 야곱이 장수와 물질, 후손의 복을 받았다고 풀고있었다.
아브라함이 복을 못 받았다니! 아브라함은 살렘의 왕이자 의의 군주, 지존자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직접 축복을 받은 것을 비롯해 야곱보다 더 오래 살았고 많은 물질과 후손들을 얻는 복을 누렸다. 물론 진짜 씨앗인 이삭만 곁에 남겨뒀지만.
게다가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으로 하나님이 불러주셨다. 아브라함 때문에 아들 이삭과 손자인 야곱도 복을 받았고 우리도 영적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복을 "못" 받았다니. 도대체 어디서 그런 해석을 배웠는지 그저 혀를 찰 노릇이다. 그것도 성령의 영감인가? 행여 그 청중들이 정말 그렇게 믿을까봐 우려된다.
유명 신학대학원을 3개 나왔다는 그는 또 브엘세바란 장소 이름을 '귀신의 집'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브'는 없다는 뜻, '엘'은 하나님, '세바'는 귀신이라는 것이었다.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너무도 어이가 없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벧엘(하나님의 집)로 갔기에 복을 받았다며 그런 해석을 하는 것이었다. 아전인수 격이다. 필자 생각엔 그가 혹 신약의 '바알세붑'('파리떼의 두목'이란 뜻으로 마귀를 가리킴)과 혼동하지 않았나 싶다.
브엘세바는 특별한 원어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라, 셩경에 그 뜻이 이미 나와있다. 브엘은 [브+엘]로 따로 뗄 수도 없거니와 정확한 발음은 '브엘'(-el)이 아닌 '베에르'(-er)다. '하나님'(엘)이란 뜻이 아니다.
'베에르'(Be'er)는 단순히 '우물'이란 뜻, '쉐바'(Sheba)는 '쉐바사람들의 지방'이란 정도의 뜻이다. 따라서 '베에르쉐바'는 '쉐바의 우물'이란 의미다. '쉐바'란 이 이름은 다름 아닌 이삭이 붙인 것이다(창 26:33). 이삭이 자기 우물을 '귀신'이라고 불렀겠는가?
그 강사의 무지와 천연덕스러움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거기에다 아멘까지 연신 강요해 오니 통탄스럽기까지 하다. '아멘'이 뭔가? "참으로 그렇습니다.", "진리입니다"가 아니던가. 더욱이 아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자체다. 그런데 그런 해괴한 해석에다 아멘을 해 달라고 요구하고 청중은 밸도 없이 거기 응하다니. 그 부흥강사에 그 청중이다. '평신도시대'란 말이 무색하다.
그는 또 신명기 33:24에서 모세가 아셀의 후손에 대하여 예언한 '다자한 복'의 뜻을 모르는 듯 했다. 낱말 뜻풀이는 안(못?) 해주고 '만사형통하단 뜻'으로 그럴듯하게 해석했다. 사실, '다자한 복'이란 한자어로 아들을 많이 낳는 복을 뜻한다. 히브리원어 '미빠님'은 "(여러)아들들의" 정도의 뜻이다. 과거 어느 여성 부흥강사는 '다자한'의 뜻을 몰라 '다사다난한, 아기자기한'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는 또 '초대교회'란 개념을 부인하면서 초대교회가 진짜 첫 교회도 아니고 구약 광야교회가 참 교회의 전형이?식으로 논술을 풀어나가고 있었다. 역시 아전인수격의 해석이고 매우 시건방지다.
차제에 곁들이고 싶은 한가지 제언이 있다. '부흥사'란 용어를 쓰지 말자. 사람은 성령님의 부흥역사의 도구일 뿐 사람자신이 교회를 부흥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부흥사'란 말도 안되는 용어다. 영어의 evangelist도 그냥 '전도자'란 뜻이다.
'부흥사'를 어떤 이들은 "부웅 띄워올렸다가 정작 떠나면 가라앉는 바람잡이"로 묘사하기도 했다. '부흥사'가 아닌 전도자, 또는 부흥성회 강사로 불려야 바람직하다.
필자는 부흥성회나 부흥강사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그러나 한국 부흥강사들은 잘못된 성경해석을 고치고 실력을 길러야 한다. 일반신도들 앞에서까지 망신 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헨리 나웬과 뉴에이지 영성

사진: 토머스 멀튼 수사와 달라이 라마
김삼
나웬의 하느님은 성경의 하나님과 달라
진리를 무시한 사랑은 무익
헨리 나웬의 다음 말을 보자.
"우리의 내성소(inner sanctuary)에 거하는 하느님은 각 인간의 내성소에 사는 신과 동일하다"(Here and Now, p.22).
위에서 나웬이 말하는 '우리'는 카톨릭 신자들, '각 인간'은 타 종교인을 뜻한다. 따라서 나웬의 하느님은 범신론, 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 뉴에이지의 신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믿는 성경의 하나님과는 동에서 서처럼 멀다.
흔히 뉴에이지는 기독교의 전체를 통째 받아들이는 듯한 간교한 제스처를 쓰지만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이다. 뉴에이지는 '더 좋은 세상'과 세속적 평화를 장담한다. 그러나 성경이 보는 세상은 마귀가 '임금'으로서 지배하는 곳으로, 더 악해지고 나빠져간다. 부분적으로는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 평화와 개혁이 일시 가능하지만 전체 세상은 악화돼간다는 것이 성경적인 상식이다.
뉴에이지는 근본적으로 죄의 개념을 인정치 않는다. 따라서 크리스토의 구속 사역이 불필요하다. 뉴에이지는 필연적으로 모든 종교들의 합일 내지 세계 단일종교를 추구하며, 아울러 기독교측의 타협과 굴복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뉴에이지는 교회의 휴거사건 이후에 올 것으로 믿어지는 적 그리스도의 세계를 위한 종교적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죄 투성이 인간의 있는 모습 그대로에서 신적 존재인 '참된 자아'를 찾는 뉴에이지적 영성은 죄관이 흐릿하거나 아예 없다. 나웬은 세상이 자선적 사랑으로 구제되고 모든 사람들이 '신적' 본성을 되찾으면, 살기 좋은 세상을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나웬에겐 원죄나 심지어 현행 자범 죄까지도 중시되지 않는다. 반대로 성경은, 크리스토의 피로 구속받고 성령과 말씀의 빛으로 온전히 거듭난 사람만이 신적 성품을 되찾는 것으로 가르친다.
나웬이 생애 말엽 사역한 라르슈 공동체의 정신장애우, 청년 아담 아네트를 그는 이렇게 묘사한다. "그렇게도 투명한 그의 마음과 인격은 내게, 우주의 마음과 하느님의 마음으로도 비쳐 보였다."
또, 나웬을 극찬해온 정교회 평신도지도자인 언론인 짐 포레스트는 이렇게 평했다. "헨리의 생애 말기에 일어난 치유의 많은 부분은 아담의 선물이었다. 아담은 그의 삶에 산 아이콘(성상)이 돼준 셈이다."
우주의 마음(?), 하느님의 마음? 삶의 아이콘? 인간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이상, 기본적으로 죄의 마음부터 보이는 죄인이 아닌가? 물론 정신장애우들은 보통 사람보다 해맑고 순수한 점이 있다. 그러나 그들도 근본 바탕은 죄인이다. 그들 가운데 악도 보이며 악령에 짓눌려 해방사역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단지 '순수'하다 해서 곧 신은 아니다.
순수 이전에 예수 크리스토의 구원이 절대 필요한 죄인이다. 그 순수를 '우주의 마음', '하느님의 마음'으로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견해다. 그리고 그 순진한 견해 속에 뉴에이지를 추구하게 하는 마귀의 장난이 숨어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콘'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웬은 정교회 신자들처럼 성인들의 성상을 앞에 놓고 기도하는 관습을 적극 권장하며 성상 기도에 관한 책(Behold the Beauty of the Lord : Praying With Icons)도 썼다. 성상 기도 관습은 죽은 성인들에 대한 숭앙, 망자와의 교제, 성인들의 '중보적' 역할에 대한 시인이며 우상숭배다.
나웬의 인류애를 실천하고 구현하려는 노력, 사랑을 통한 치유의 시도는 분명히 본받을만 하다. 그러나 그뿐이다. 알버트 슈바이처, 헬렌 켈러, '마더' 테레사 등 위인으로 칭송받다가 간 숱한 사람들이, 실상은 성경의 크리스토와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기독론(크리스토관)은 성경과는 전혀 다르다. 켈러는 이단인 즈베덴보리 교(Swedenborgism)의 얼굴 마담 같은 존재다.
사랑은 진리의 띠를 매야 한다. 진리가 결핍된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니다. 성경대로 유일한 길, 진리, 생명이신 크리스토를 인정하지 않는 사랑은 아가페가 아니란 얘기다. 아가페의 하나님은 동시에 진리의 하나님이시다. 크리스토 자신이 진리이시다. 참된 치유는 성경 말씀을 진리 그대로 실천하려는 노력이 결부된 사랑 안에서 나타난다. 참된 치유는 신령과 진리, 즉 성령과 하나님 말씀이 올바로 선포되고 신앙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나웬의 구원관이 그의 사랑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니, 그 '사랑'은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란 얘기다.
뉴에이지는 모든 인류를 다 받아들일 듯 엄청난 사랑의 제스처를 하지만, 그 '사랑'은 참된 아가페의 하나님과 진리이신 크리스토와는 무관하며, 결국 지옥을 향해가는 내리막길이다. 캄캄한 무저갱을 향한 소용돌이, 검은 아가리에 불과하다. 그 무지개빛 신기루의 손짓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나웬과 테레사
크리스토를 통해 구속받아야 할 죄인들 속의 죄를 보지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속에서 '신'을 찾는 사람들이 뉴에이저들(New Agers)이다. 나웬보다 더 많은 기간동안 인류애의 봉사로 온 인류에 존경받던 '마더' 테레사의 발언들을 살펴보자.
"죽어가는 사람, 장애우들,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 받아들여지지 않고 사랑받지 못하는 대상, 그들이 곧 탈을 쓴 예수님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나는 하루 24시간 예수님과 함께 할 기회를 얻습니다."
"모든 에이즈 피해자는 측은하게 위장된 예수님입니다. 예수는 각 사람 속에 있습니다."
그럴듯 한가? 독자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가? 다음을 보자.
"우리는, 하느님과 일대일로 대하면서 삶속에 그분을 받아들일 때 '개종'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힌두, 더 나은 무슬림, 더 나은 카톨릭, 더 나은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그 신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무런 피부색도, 아무 종교도, 아무 국적도 우리들 사이에 끼어들어선 안됩니다. 우리는 다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파괴할 때 하느님을 파괴하는 것입니다."(유엔 연설).
"나는 모든 종교를 사랑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사랑의 행동으로 더 나은 힌두, 더 나은 무슬림, 더 나은 불교도가 된다면 뭔가 다른 것이 거기 자라나고 있는 것입니다."
"만물이 하느님입니다. 불교도, 힌두교도, 기독교도 등등 모두가 똑같은 신에게로 나갈 수 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위의 말도 다 테레사의 것이다. 테레사와 그녀의 '자선선교단'은 결코 기존개념의 전도나 포교를 통해 카톨릭을 만들지 않는다. 사랑만 전해주면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다는 견지에서다.
나웬의 구원관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필자의 딴글 '동성애자로서의 헨리 나웬'에서도 인용했지만 나웬의 마지막 저서엔 다음 글귀가 있다. 그의 보편론적 구원관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단서다.
"오늘 나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하느님의 집 대문을 열려고 오실 때, 모든 인간이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예수를 알든 모르든. 각 사람 나름대로 신께 나아가는 길을 청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소명임을 깨닫는다."('Sabbatical Journey'.1998년 판. p.51).
"각 사람을 위한 자리가 하나씩 천국에..(마련돼 있다)"('Life of the Beloved'. p. 53'). 나웬은 또, 우리 모두가 '선택된 자들'이라고 말한다. ".. 사랑받는 자들이 되기위해 우리는 요구해야만 한다."(같은 책).
누가 누구에게 요구한단 말인가? 예수를 제대로 믿지도 않은 채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들이 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위대한 영성'의 위대한 착각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성경은 오직 예수 크리스토만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고, 성령과 말씀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이렇게 볼 때, 나웬의 구원관은 '최고의 영성'은커녕 사실상 주일학교 학생보다 못하다고 하겠다.
나웬의 사상은 뉴에이지에 직결
나웬은 더 나아가 '모든 것은 하나'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존재하는 만물의 완전한 '하나됨'의 실현화로 나아갈 수 있다."(Bread for the Journey). 모든 종교의 통합화를 추구하는 뉴에이지의 핵심 이슈의 하나다.
이에 대해, 뉴에이지 구루였다가 신자가 된 레이 영겐 씨는 이렇게 평했다. "그렇다면 사탄과 하나님도 하나란 말인데, 그런 말은 악령이나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이쯤 되고보면, 나웬은 '최고의 영성'은커녕, 성경적으로 볼 때 당연히 이단인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하나'란, 야훼 하나님을 대적하여 온땅의 '하나'를 이루려던 고대 바벨탑, 바빌론의 종교를 그대로 대물림한 것이나 다름없다.
나웬은 토머스 라이언의 책 ‘기독교적 삶을 위한 훈련’(Disciplines For Christian Living. 1993년)을 위한 서문에서는 이렇게 썼다.
“저자는 불교와 힌두교, 회교 등의 선물에 대하여 놀랍게 열린 마음을 보여준다. 그는 그(종교)들의 위대한 지혜를 기독교의 영적 삶을 위해 과감히 끌어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종교다원적, 종교혼합적, 뉴에이지적 입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잰 잔슨은 책 ‘영혼이 들을 때-명상기도 속에 안식과 향방 찾기’(When The Soul Listens: Finding Rest and Direction in Contemplative Prayer)에서 나웬을 이렇게 인용한다.
“한마디 말이나 구절의 반복은 실로 우리를 달래주고 매우 자유롭게 해준다. 나웬이 말했듯 ‘우리의 복잡한 내적 삶을 비우고 하나님과 함께 거주할 수 있는 고요한 공간'을 창조하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내적 삶을 비우고’? 사뭇 불교적인 말이다. [여기서 존슨이 말하는 '한마디 말이나 구절의 반복'은 힌두교에서 따온 만트라 기도를 말한다. 이에 관해 나중 설명하련다.]
나웬의 영성적 스승인 토머스 멀튼은 말한다. "우리가 (단지 기독교인들만이 아닌) 사람들이 하느님과의 연합을 달성하도록 어떻게 가장 잘 도울 수 있을까? 그들이 이미 하느님과 연합돼있음을 말해주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과 크리스토를 알기도 전에 타 종교인들도 하나님과 연합돼있다고? 그야말로 뉴에이지 사상이다. 결국 나웬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이 아닌 사탄의 도구로 몰락한 셈이다.
참된 기독교는 성경말씀 이외의 모든 종교를 우상종교로 배격한다. 기독교가 말하는 참된 '하나'는 오직 성령 안에서만 가능하다.
나웬과 토머스 멀튼(Thomas Merton)
나웬과 멀튼과는 불가분의 관계다. 실과 바늘처럼, 두 바퀴처럼 늘 함께 간다. 영문 구글닷컴 탐색기에 'Nouwen and Merton'이라고 써넣으면 1만여 관련자료가 뜬다. 포레스트는 두 사람의 엄청난 공통점과 (약간의) 차이점을 장문에다 담기도 했다.
진보적 카톨릭이자 종교 혼합주의/신비주의자인 토머스 멀튼의 책과 사상을 나웬은 적극 추천했다. 멀튼 신부는 동서방교회의 합일과 동시에 동서양 종교의 합일을 지향했다. 나웬처럼, 그 역시 신교권에서까지 추앙받는다는 사실은 실로 경악스럽다. 멀튼은 나웬보다 더 문제성이 농후한 사람이었다.
나웬은 멀튼을 딱 한번 만났지만 '영성적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추종했다. 나웬의 책 ‘마음의 길’(The Way of the Heart) 등의 책엔 멀튼 외에도 도교의 장자, 떼이야르 드 샤르뎅, 윌리기스 제이거, 사막교부들, 힌두교의 에크낫 에아스와란 등이 긍정적으로 인용됐다.
'루이 신부'로도 애칭된 멀튼은 20세기 카톨릭 에큐메니칼리즘의 선구자였다. 그는 당대에 종교다원주의, 혼합주의에 누구보다 앞장선 한 사람이다. 도교, 선불교 등이 찾는 깨달음과 득도의 목표가 결국 기독교와 같다고 이해함으로써 20세기 뉴에이지 사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반평생 도교, 불교와의 대화를 추구했다. 또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배워, 베트남 전쟁을 극렬히 반대한 반전/민권운동가, 평화주의자로, 에털 케네디 부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오프라 윈프리가 열광적으로 존경하는 대상이다.
1970년대 책 ‘살기 위한 기도’(Prayer to Live)에서 나웬은 멀튼이 힌두교 도사들에게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을 시인했다. 힌두교의 ‘요가저널’에 따르면, 멀튼은 아시아 여행을 하기 오래 전에, 이미 선불교, 수피교, 도교, 힌두 베단타 등과 접하고 동양철학과 지혜를 직접 수련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멀튼은 평소 "가능하다면 훌륭한 불교도가 될 수 있길" 원했다. 그는 또 5년에 걸쳐 장자와 도교에 관한 다양한 글들을 번역하면서 노트를 하다가 노자의 도덕경에 매료돼 ‘장자의 길’(The Way of Chuang Tzu)을 편집했다. 단순히 동양종교를 참조한 정도가 아니라 그속에 깊이 침잠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나간 것이다.
멀튼의 글을 보면 뉴에이지 영성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인류의 일원이 되는 것은 영광스런 운명이다..만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실제 모습을 모두 볼 수 있기만 한다면 엎드려 서로를 경배하는 큰 문제가 일어날 줄로 나는 추측한다..우리 존재의 중심엔 죄와 환멸에 때묻지 않은 '무'(nothingness)의 점, 순수진리의 점이 있다..이 작은 점은 우리 속에 있는 신의 순수한 영광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 속에 있다."
멀튼의 책을 다 읽어보지 않아도, 위의 짤막한 글에서 이미 우리는 성선설, 무원죄설, 보편구원론(만인구원론), 인간숭배론, 인간신론, 종교혼합/다원주의, 크리스토 구속의 '불필요성' 등, 뉴에이지 사상의 핵심요소들을 한꺼번에 짚어낸다. 웨인 티즈데일은 '세계 속의 한 수사'(A Monk in the World)에서 멀튼이 선불교, 힌두 베덴타, 요가 텍스트 등을 한데 뭉뚱그린 '국제 초종교영성의 비저너리'로 소개했다.
아무튼, 나웬은 멀튼의 책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멀튼의 수도원 처소를 직접 방문했으며, 여러 관련 도서와 칼럼을 썼다. 나웬의 멀튼 관련 저서는 '멀튼과의 만남'(Encounters with Merton), ‘토마스 멀튼, 명상적 평론가’(Thomas Merton: Contemplative Critic. 1972년) 등이 대표적이다.
나웬은 또 1971~81년, 예일대학교 신학원 부교수(1977년 정교수로 승진) 시절, 딴 주제와 함께 멀튼의 삶과 저작에 관해 집중강의한 바 있다. 나웬이 멀튼을 얼마나 흠모했냐 하면, 현재 토론토대학교 세인트마이클대학의 존 켈리 도서관에 소장된 나웬의 유품들중 멀튼에 관한 것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1968년 멀튼의 장례식 때도 그가 조사를 했다.
멀튼의 생애를 잠깐 훑어보면, 그는 1915년 프랑스 프라드에서 보헤미언 생활을 하던 뉴질랜드 출신 화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3살 때 세상을 떠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한 뒤엔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 콜럼비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본래 무신론자였다가 그즈음 카톨릭에 귀의한 그는 맨해튼 할렘에서 잠시 영어를 가르치다가
1941년 수사가 되기로 결심, 시토수도회(일명 트래피스트)에 가입해 캔자스주 겟세마네 수도원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후배 수사들을 양성하는 한편, 시와 묵상, 사회비평 등을 책과 글로 써내어 명성을 떨친다. 그림도 잘 그려, 퍽 다재다능했다.
책으로 바깥 세상과 교류하면서 유명해진 그의 자전적 수기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 1948년)은 일약 베스트셀러가 된다. 열렬한 도교, 불교, 힌두교 예찬론자였던 그는 동양 종교를 직접 피부로 알고 습득하려고 생애 마지막인 1968년 방콕에서 열린 불교-카톨릭 수사들의 에큐메니컬 모임에 참석했다가 호텔에서 감전사고로 죽었다. 수도생활에 묶여 지내던 그의 평생 소원이 아시아 불교 성지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멀튼은 또 신비주의 페미니즘을 수녀들에게 강의한 적도 있다. 나웬과 멀튼이 숭앙하던 노르위치의 율리아(Julia of Norwich) 등 수많은 중세 여성 신비주의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이기도 했다. 남성 중심이고 여성 사제를 엄격히 금하는 카톨릭에서 페미니즘이 논해지다니, 퍽 역설적이다.
나웬의 ‘토마스 멀튼, 명상적 평론가’는 멀튼의 사상에 끼친 선불교와 도교의 영향을 관찰했다. 또 명상기도(Contemplative Prayer)의 효력에 관한 찬사로 점철돼있다. 신구교에서 요즘 흔히 '관상기도'로 불린다. “멀튼은 수도원을, 하느님을 알기위해 자신을 정화하는 피난처로 볼뿐더러 영적 행동의 센터로 보고, 이 세상의 환멸에 도전하여 (그것을) 벗기는 곳으로 삼았다. 삶의 철저한 요구를 더 발견할수록 자신을 정화하는 삶은 덜 강조했다.”
멀튼의 말년의 책 ‘참선과 탐욕의 새들’(Zen and the Birds of Appetite)에서는 기독교계 신비철학자 마이스터 에카르트와 일본의 선불교를 비교하면서 제2부 전체를 선승 다이세쯔 스즈키(일명 D.T. Suzuki)에 몽땅 할애하기도 했다. 그는 [0=무한]이란 등식에다 불교의 '공'(슈나타) 즉 비움과 동시에 크리스토의 사랑의 영으로 충만해 질 수 있다고 대입시켰다.
멀튼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젊은 시절 수많은 여성들과 섹스를 즐겼고, 말년엔 한 수녀와 깊은 로맨스에 빠지기도 했다. 그녀와 단둘이 수도원 한 귀퉁이에서 장시간 키스를 하며 시간가는 줄조차 모를 정도였다. 그것이 그의 노년의 모습이었다. 나웬이 평생 비공개적 동성애자였듯, 멀튼도 성적인 비밀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카톨릭을 빠져나와 정상적인 결혼을 했으면야 무슨 문제랴만.
나웬과 라벗 조나스
나웬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추앙하고 답습하는 사람은 한국교회에 그를 소개해온 일부 신복음주의자들이나 그의 책을 수십권 읽은 독자가 아니라, 바로 나웬에게서 직접 배우고 따르는 그의 제자인 카톨릭계 인사들이다.
매사추세츠의 초종교 비영리재단 ‘빈 종’(Empty Bell)의 대표인 카톨릭 평신도 라벗 조나스(Robert A. Jonas) 박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저술가/영성상담가/음악가/수련지도자인 조나스는 나웬 사후 최근까지 해마다 나웬 굿(?)을 하다시피 추모해온 사람이다. '빈 종'을 뜻하는 일본 불교 용어 '기레이'는 텅빈 종과 동시에 텅빈 영혼을 뜻한다.
예를 들면, 2년전인 2003년 1월18일, 뉴욕 맨해튼 121가 콜퍼스 크리스티 성당에서 ‘토머스 멀튼과 헨리 나웬: 크리스토와 동양을 조망하며’(Thomas Merton and Henri Nouwen, Looking East with Christ) 란 영성수련강좌가 있었다.
조나스의 ‘빈 종’과 그가 이사로 있는 헨리나웬소사이어티, 그가 자주 드나드는 성공회단체 '루아'(RUAH. 루아는 히브리어로 '호흡', '영'의 의미)등이 공동 주관했다. 이 모임에서 조나스는 아시아의 (불교)영성과 토마스 멀튼 및 헨리 나웬의 상호관계, 기독교의 성삼위일체와 불교의 트리카야와의 컨텍스트 속에서 멀튼-나웬의 관계를 논했다.
조나스는 하버드 대학원 시절인 1982년 신학원 강의를 들으면서 나웬을 처음 만났다. 그후 80년대 중반에 나웬은 하버드를 떠나 카나다 라르슈에서 생활하면서 90년대초 여기저기서 라르슈 강좌와 모금행사에 동행해줄 것을 조나스에게 부탁했다.
조나스는 거기 응해 간혹 관상기도에 관한 강의를 하거나 선피리 '샤쿠하치'도 불었다['수이젠'이라고도 불리는 선피리는 대나무로 만든 일본 전통 불교악기로 한국의 대금과 비슷하다].
89년 즈음, 조나스는 성공회, 카톨릭, 유니테리언을 상대로 명상기도를 이끌고있으면서 필요한 사람들에겐 돈을 받고 심리요법을 시술했다. 그 당시 트라피스트인 토머스 키팅 신부의 '명상 아웃리치'(CO), 존 메인을 승계한 프리먼의 '존 메인 크리스천 명상회' 등이 카톨릭권의 명상기도를 이끌었다. 또 메릴랜드 베데스다의 '샬렘 인스티튜트'가 같은 선분 위에서 신구교 간의 가교 역할도 했다.
위에서 비친대로, 조나스는 1993년 '빈 종' 건립당시 나웬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다. 보스턴 인근의 '기독교적' 명상기도수련센터인 ‘빈 종’(www.emptybell.org)은 입구에서 실내까지 온통 일본불교 냄새가 물씬 나는 기도처다. 최근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불교 혼합식 영성수련을 제공해왔다. 미륵상과 십자가 장식이 공존하는 내부 장식 자체에 불교적 요소가 농후하며 청중은 좌선을 위한 가위다리로 앉아야 한다. 입주 행사 때 나웬이 축사를 했음은 물론이다.
나웬은 죽음을 얼마 앞둔 1995년 석달간 이곳에 머물며 '사랑의 내적 음성'(The Inner Voice of Love), '그 잔을 마실 수 있나?'(Can You Drink The Cup?), '여정을 위한 양식'(Bread for the Journey) 등 세 권의 책 초고를 썼다. 또 매일 이른아침 자기 방 또는 빈종에서, 주일날은 전체 멤버들과 함께 영성체를 나눴다.
나웬의 죽음은 조나스에게 엄청난 상실이었다. 멀튼과 나웬의 열렬한 독자이기도 한 조나스는 나웬 생시에 3권에 달하는 나웬 저작집을 서문을 달아 편집했다. '사랑받는 자의 아름다움'(Beauty of the Beloved)도 조나스가 편집했다. 불교-기독교연구학회(SBCS) 회원인 그는 또 달라이라마와 함께 인도, 이탈리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등지에서 3회에 걸친 불교-기독교 수련회를 이끌었다.
조나스는 자신의 영성수련 비법으로, 매일 카톨릭 명상기도에다 샤쿠하치의 소리를 접목시켜 ‘경건’을 쌓고있으며 불교, 카톨릭, 세속음악계 등에서 샤쿠하치 연주회를 자주 갖는다. 불교명상 음악을 녹음한 그의 연주음반(CD) ‘대피리 불기’(Blowing Bamboo)가 나와있고 가장 최신 음반은 불교음악과 고대 영국의 기독교음악인 켈트성가를 섞은 ‘폐허로부터의 새 생명-선불교, 켈틱 성가와 명상’이다. 전형적인 뉴에이지 음악이라 하겠다.
조나스는 최근까지도 그는 기독교-불교 교류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또 '잔잔한 물가로-유대교, 기독교와 부다의 길'(Jews, Christians, and the Way of the Buddha)이란 책의 '불교' 항을 맡아 썼다. 이 책은 유대교와 카톨릭교, 티벳불교, 선불교 등 다양한 종교의 명상을 통한 합일을 추구하는 내용이다.
조나스는 본래 감리교인으로 유아세례를 받고, 루터교인으로 자라 루터교 목사가 되려고 교단대학교 장학금까지 받았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무렵 종교에 환멸을 느껴 다트머스대학으로 옮겨 정치학을 전공한다.
재학 당시 단 밀러 사범에게 태권도와 함께 도교식 명상훈련도 받는다. 그는 이 정신집중을 통해 "즉시 종교적, 영적 경험으로 빨려들어갔다"고 술회했고, 선불교에 몰입했던 전 성공회사제 앨런 와츠의 책을 통해 "도교가 기독교보다 낫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후 자신도 도시와 농촌에서 태권도와 정신집중을 가르치고 도교식 명상을 하면서 토머스 멀튼의 책('선과 탐욕의 새들', '장자의 도', '신비주의자들과 선불도사', '아시안 저널' 등)과 D.T. 스즈키의 '신비주의-기독교와 불교'(Mysticism: Christian and Buddhist) 등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 또 유기농산물 농장을 운영하다 카톨릭 카르멜회 수사들을 만나 16세기 스페인 신비주의자 '십자가의 성요한'을 알고나서 카톨릭으로 개종해 매일 침묵기도와 수련 등을 하는 3종 평신도 카르멜 회원이 된다.
1980년대초 이혼을 한 그는 성공회 교인인 둘째 아내 마거릿을 만나면서 카톨릭에 회의를 느껴 성공회인이 된다. 아내는 성공회 사제가 됐다. 1983년엔 마거릿에게서 생일선물로 9주동안 비파사나 명상수련회 티켓을 받아 다녀온 뒤 5년간 불교명상과 침묵수련, 좌선, 티벳불교 등에 몰입한다.
하버드대에서 교육학과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난 뒤 그는 예수회 웨스튼 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명상영성과 함께 명상심리학을 연구한다. 그 역시 나웬처럼 심리학자이면서 심리요법사이다. 조나스는 현재 카톨릭이자 독실한 불교신자로 자처한다.
나웬은 조나스에게 다양한 가르침과 함께 고대 사막교부들, 중세 수사들의 신비영성과 관련된 명상기도와 아울러 라르슈 공동체도 소개했다. 이때부터 조나스는 라르슈의 중요한 후원자가 된다.
나웬과의 만남 말고도 조나스의 삶을 바꾼 사건은 조산한 어린 딸 레베카의 죽음이었다. 깊이 절망하던 그가 찾은 한가닥 '빛'은 그를 만나러 "찾아온" 중세신비주의자 에크하르트의 환상이었다. 에크하르트는 그에게 애도와 영성, 이별과 사랑, 하느님에 관해 '영적' 조언을 해줬다. 이것은 성인 또는 망자와의 교제를 믿는 카톨릭신앙에 의거한 것으로, 사실상 망자와의 대화를 금지한 성경상으로 볼 때, 에크하르트 본인이 아닌 악령임에 틀림없다.
‘러베카, 한 아버지의 슬픔에서 감사로의 여정’ Rebecca: A Father's Journey from Grief to Gratitude (NY: Crossroad, 1996)이란 책이 그래서 나왔다. 이 책의 서문도 써준 나웬은 짤막한 서평에서 "..이것은 병원에 관한 책이면서 우주에 관한 책이다. 인간에 관한 책이면서 아울러 신적 존재에 관한 책이다"라고 했다.
조나스는 나웬이나 멀튼, 기타 관련인사들처럼 에크하르트 외에도 고대의 에바그리우스와 카시안, 노르위치의 율리안, 빙겐의 힐데가르드, 아빌라의 테레사 등 신비주의 수사들의 명상기도를 본받았다.
이처럼 조나스는 끝없이 복잡하고 잡다한 종교와 명상에 몰두하면서 뉴에이지의 길을 걸어갔고, 나웬도 대동소이한 그의 친구였다. 나웬, 멀튼과 조나스 등의 공통점은 모두 유럽 출신이며 모두 심리학자라는 것이다.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뉴에이지에 깊이 접속돼 있다.
관상기도-뉴에이지로 가는 길목
나웬의 필생의 과제 한가지는 "두려운 맘, 자비를 향한 외침, 희망의 빛 줄기, 영적 권능, 세계의 요구를 드러내는 기도"의 힘이었다. 그는 영혼의 빛을 곧 어둠(고독과 묵상)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그에게서 빛과 어둠의 구분이 쉽지 않다. 그가 영성을 갈구하면서 뉴욕주 제네시 계곡의 트래피스트 수도원을 두번 방문해 쓴 그의 '제네시 일기'(he Genesee Diary)를 보면, 그곳의 매일 경험과 수도원적 묵상에 관해 썼다.
5년후 두번째 방문시엔 매일 명상기도에 집중한다. 이 기도를 통해 그는 내적인 카오스와 싸우면서 마음 한구석 "하느님이 거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 애썼다. 문제는 그의 관상기도를 통한 '신'의 내재가, 거듭난 참 신자라면 누구나 매순간 체험하는 성령의 내재와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의 기도는 멀튼 식의 관상기도였다.
레이 영엔은 고대 광야 수도사들과 선불교식 만트라를 합성한 멀튼-나웬 식 관상기도가 뉴에이지 식 집중기도(centering prayer, 카톨릭에선 '향심기도'라고도 부른다)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폭로했다. 미국 최대의 뉴에이지 전인교육센터인 오메가인스티튜의 조운 던컨 올리버의 ‘명상적 삶’은 아빌라의 테레사, 십자가 성요한, 노르위치의 율리안과 함께 멀튼과 나웬, 토마스 키팅 등을 선구자로 꼽고있다.
멀튼은 러시아정교회, 퀘이커의 일파인 쉐이커, 선불교 등의 명상기도에 관한 연구에서 이렇게 썼다. "이 모든 연구는 하나의 핵심 관심사로 통일돼있다. 즉 서로 다른 전통의 사람들이, 종교적 또는 형이상학적 깨달음의 최고경지로 이끌어주는 '길'의 의미와 방법을 배태시킨 다양한 전통의 사람들의, 다양한 방법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나웬, 멀튼, 조나스, 라르슈공동체의 설립자 장 바니르 등은 모두 '관상기도' 운동을 적극 지지하거나 스스로 즐긴 사람들이다. 관상기도의 지도자로는 멀튼과 나웬 외에도 이블린 언더힐, 로즈메리 루터, 토마스 키팅, 리처드 로어, 조스 홉데이, 비드 그리피스, 데이빗 스텐들-래스트 등이 있다.
개신교계에선 리처드 포스터(레노바레 대표), 필립 얀시, 유진 피터슨 등이 관상기도 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현재 카톨릭 중심으로 전세계 기독교계를 대상으로 급속도로 보급되고있는 관상기도 운동은 뉴에이지 영성과 직결된, 지극히 위험한 활동이다. 관상기도는 때로 'meditation'이라고도 불리지만, 성경의 '묵상'과는 절대로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이 차이에 관해서는 나중 상술한다]. 관상기도에 자칫 잘못 빠져들면, 헤어나지 못할 악령의 포로가 될 수도 있다.
로렌스 프리먼 신부와 관상기도
카톨릭 관상기도운동의 세계적 지도자는 런던에 있는 세계크리스천명상커뮤니티(WCCM)의 디렉터, 로렌스 프리먼(Lawrence Freeman) 신부다.
베네딕트수도회 지도사제인 프리먼은, 런던 코크포스터 소재 '올리베탄 베네딕트' 회중 소속 '크라이스트 더 킹' 수도원의 수사로, 지난 20세기 관상기도운동의 선구자였던 존 메인(
John Main) 신부의 제자다.
메인을 도와 1975년 WCCM의 전신인 크리스천 명상센터를 런던에 개설했고 1982년 메인의 사후 계속 이 운동에 앞장서왔다. 메인은 생시에 토마스 멀튼의 수도원을 찾아와 관상기도 세미나를 공동 주최한 바 있다. 프리먼은 옥스퍼드 출신이다.
WCCM은 매년 정기적으로 존 메인 세미나와 몬테 올리베토 수련회를 런던과 세계 각처에서 개최한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50개국에 27개 명상센터와 천여개의 관상그룹을 두고있다. 프리먼은 일년내내 전세계를 두루 다닐 정도로 이 운동에 미쳐있고 매우 활동적이다.
2월중에도 인도에서 순례를 하고있다. 방문대상지는 존 메인에게 말레이지역 명상을 가르친 라마크리시나의 수도승 스와미 사트야난다의 다르키네스와라 신전, 힌두교 여신 칼리의 사원인 칼리가트,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의 집과 에이즈환자를 위한 테레사의 '크리파' 사회복지재단, 힌두교 사제 스리 라마나 마하르시가 세운 티루바나물라이의 라마나슈람 등 주요 관상기도처들. 이런 것이 위대한 영성으로 가는 길이라니, 사뭇 엽기적이다.
프리먼이 세계 각곳에서 주관하는 기도모임에 꼭 따라붙는 것이 요가 교습이다. 힌두교, 불교계와 끊임없는 대화와 교제를 나눠온 그는 급기야 티베트불교 지도자 달라이라마와 만나 '평화의 길' 대화모임을 갖기도 했다. 이 모임에 나웬의 제자 조나스도 함께 했다.
프리먼은 "관상은 모든 위대한 종교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전통"이라며 "그것은 초종교 대화에 중요한 공통분모와 세계평화의 바탕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즉 그가 관상기도를 이끄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세계종교의 단일화에 있다. 지금까지 프리먼의 모임 초청연사들중엔 달라이라마 말고도 라르슈 설립자 장 바니르도 있다.
프리먼의 스승 메인은 소위 '만트라(Mantra) 기도'를 보급해 카톨릭을 비롯한 교계에 폭넓게 보급돼왔다. 만트라 기도, 또는 향심기도는 짧은 한 두 낱말을 계속 반복하는 형태다. 메인이 가장 추천하는 문구는 아람어 '마라나타'. 요한계시록과 파울 서신 등에 나타나며 "주여, 어서 오소서"란 뜻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만트라 기도에서는 뜻이 중시되지 않고 단순한 반복이 중시된다. 예수님이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금하신 것과는 모순된다고 할 수 있다.
나웬도 그의 책 '심령의 길'(The Way Of Heart)에서 만트라 기도를 적극 권장한다.
"외마디 낱말의 조용한 반복은 우리가 정신과 함께 심령으로 내려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심플한 기도방법은 능동적인 존재인 하느님께로 우리를 열어준다."
셜리 뒤불레이는 그런 그를 가리켜 "거룩한 삶은 한편 설교보다 낫다"는 초기 수사의 말의 구현으로 봤다.
고대 사막수사, 수녀들, 중세 신비주의자들의 명상기도를 힌두교, 불교의 명상기도와 성공적으로 접목시킨 메인에게서 영향을 받은 카톨릭은 무수하다. 심지어 카톨릭 사제가 아예 인도와 스리랑카 등 현지에서 힌두교와 불교 도사인 요기, 구루, 스리, 스와미 등이 되어 아슐람(암자)을 차려놓고 명소로 이름을 떨치는 예도 적지 않다. 비드 그리피스(Bede Griffths)가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리피스 역시, 프리먼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리피스는 그의 책 '동서의 결혼'(The Marriage of East and West)에서 동양종교는 여성적, 서양종교는 남성적이라며 기독교가 이젠 동서의 '결혼' 곧 합일을 다시 추구할 때라고 결론짓는다. 그는 힌두교 고전 '바가바드 기타'를 온정이 넘치는 "온 인류의 영적자산의 일부"라며 이를 카톨릭을 위해 해설한 '바가바드 기타-기독교적 주해서'(A Christian Commentary on the Bhagavad Gita)를 썼다.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를 나온 그리피스는 베네딕트 수사 겸 학자가 되어 런던에서 20년을 지낸 훗날, 인도 남부 타밀나두 정글지역에서 명상적, 과학적 생활을 하면서 샨티바남에 카톨릭식 암자를 차려놨다. 이곳은 '세계종교 단합의 센터' 역할을 하고있다는 카톨릭계의 중평이다. 카톨릭 관상기도자들은 인도나 스리랑카 등에 가면, 반드시 이런 카톨릭-힌두도사 암자를 방문하는 것이 순례코스로 지정돼있다.
이 샨티바남 공동체의 공동설립자는 프랑스계 우파니샤드 사제 앙리 르소 신부(스와미 아비식타난다)로 메인의 첫 스승이었다. 힌두 우파니샤드와 기독교의 합일을 추구한 르소는 기독교 삶은 늘 명상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책 '사치다난다'도 그런 맥락에서 쓰여졌다.
그리피스는 1991년 미국 인디애나주 뉴하머니에서 열린 존 메인 세미나에서 '크리스토 안의 새 피조물'이란 주제의 강연을 통해 메인을 '현 교계의 가장 중요한 영적 가이드'로 지칭했다. 자신의 책 '실재의 새 비전'(A New Vision of Reality)을 간추려 강의한 그는 '환생', '종교일치의 길', '초월명상' 등 전형적인 뉴에이지와 페미니즘에 관한 얘기들을 했다. 1993년 86세를 일기로 죽기까지 그리피스는 '산야시'(힌두교 성자)로 추앙받으며 살았다.
결론
성경의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읊으며 음미하는 것으로, 뉴에이지적인 관상기도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뉴에이지는 관상을 통해 '텅빈 마음'을 추구하지만, 기독교는 회개로 깨끗해진 마음을 하나님 말씀으로 채운다.
물론 기독교에도 침묵기도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침묵은 성령 안에서 크리스토를 묵상함이지, 자신의 신격화를 추구하는 침묵이 아니다.
나웬의 영성신학은 실로 우리가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최고의 영성'으로서 우리가 본받을 모범이 못된다. 진정한 영성은 어디까지나 성경에 기초해야 하며 성령에 좌우돼야 한다.
고대의 신비수사들과 나웬과 멀튼, 메인 등을 숭앙하면서 개신교 내에서 관상기도를 펼쳐온 리처드 포스터, 유진 피터슨, 필립 얀시 등은 널리 알려진 복음주의자들이지만, 엄밀히는 신복음주의자들(neo-evangelists)이며, 뉴에이지적 관상기도와 엄격한 구분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 받아 마땅하다.
걸러 낸 반쪽 짜리 복음

김삼
복음을 통째로 믿지 않고 이런저런 특수 여과기, 필터나 가는 체로 걸러내어 믿는 사람들이 많다. 신학이라는 필터, 과학이라는 필터, 철학이라는 필터, 자기 견해라는 필터.. 온갖 필터로 걸러서 믿는다. 반면 복음을 체로 거르지 않고 성경 말씀 그대로 믿는 사람은 오히려 "좀 안 된" 사람, "맛이 살짝 간" 사람으로 취급받곤 한다.
신학이라는 필터도 진보신학 필터, 보수신학 필터 두 가지가 있다. 필자도 다년간 보수신학을 공부한 바 있지만, 진/보 양쪽이 다 성경과 복음을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받지를 않는다. 신학교 시절 친구 하나는 요즘도 이런 소릴 잘하곤 한다.
성경에 나타났던 초기의 모든 계시와 이적은 점진적으로 약화돼 현대엔 거의 불필요하게 됐다. 성경 말씀만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독자도 들어본 소릴 게다. 그 말에 동의하는가? 물론 부분적으로 일리는 있어 보인다. 사실 에집트 탈출 당시의 열 재앙, 홍해 가르고 건느기, 보리빵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 훨씬 넘는(유대 산정법으로 당시 5000명이란 남자들만 가리킨다) 군중들을 먹이기 등 거창한 이적은 요즘 없지를 않은가?
그런 스펙태큘러한 이적들은 각 시대별로 성경의 고유한 표본적 계시 기록을 위해 필요했다고 사료된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계시와 이적이 점진적으로 약화돼 현재는 아예 "사라진" 것으로 인식하면 잘못이다. 하나님의 손이 짧아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사실 성경의 기록계시와 이적의 존립과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안 선다. 계시가 아니더라도 이적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계시에 기록될 이적만 행하시는 분은 아니다. 예를 들면 사도 요한은 성경에 이루 기록될 수 없을만큼 엄청난 이적들이 있었던 사실을 귀띔해준다.
현대에 초자연적인 이적이 있다고해서 결코 기록된 성경 계시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다. 그것이 성경에 의도적으로 추가되어 성경이 가감수정되지 않는 한 말이다. 성경 말씀은 결코 가감수정될 수 없는 대상이다! 지금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계시가 완성됐다고 해서 현대에 복음적/초자연적 이적의 필요성과 이적의 당위성 까지 사라져줘야 하는 건 아니다.
현대의 이적/은사/신유/방언 등을 부정하려 드는 현상은 진보주의자나 보수주의자나 비슷하다. 양쪽 다 체로 걸러서, 필터로 걸러서 믿는다는 것이다. "성경이면 되지, 뭐가 더 필요하냐?"는 식이다. 그런데 "성경이면 다 된다"는 그들의 말도 알고보면 사실이 아니다. 말로는 "성경이면 다 된다"고 해 놓고 반드시 신학의 체로 받칠 준비를 해놓고 있다.
오해하지 말라. 필자는 신학무용론자가 아니다. 신학은 필요하다. 하지만 신학이 성경의 시녀여야지 성경을 타고앉아 성경의 주인 노릇을 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복음을 신학의 필터로 걸러선 안된다는 말이다.
주님이 하신 이적/표적/기사들은 영 사라진 게 아니라 사도들과 제자들을 통해 고스란히 전승됐다. 주님의 마지막 대명('지상명령') 속엔 이적/표적/은사에 관한 교훈도 포함돼 있다(마르쿠스복음서 16:17). "말씀만 전해라. 그리고 끝!" 하시지 않았다. 성령을 보내시면서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단서를 붙이셨다. 권능? 그렇다. 그것이 뭐라고 생각되는가? 믿음으로 초자연적 사역을 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과 은사다. 그것이 말씀 전파에 곁들여져야 한다는 얘기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반드시 이를 이행하셨다. 초자연적 사역으로 말씀을 뒷받침하셨다는 얘기다. 4 복음서가 다 그렇고 사도행전도 다 그렇다. 그 바탕 위에서 서신서들도 기록됐다.
짐짓 "성경 말씀이면 다 된다"면서 복음으로부터 초자연적/권능적 요소를 걸러내려고 힘께나 쓰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얘기를 하고싶은지도 모른다.
"주님, 왜 말씀만 전하시지 복잡하게스리 이적까지 행하셨습니까?"
"주님의 제자 분들은 또 선교만 하시지 왜 권능은 행하시고 그랬습니까? 그런 거 좀 하시지 마시지.."
"주님, 요즘이야 어찌 얄궂고 이상한 이적과 은사 따위가 필요합니까? 필요없죠? 그런 건 좀..흉칙하질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성령의 도래를 예고하시면서 분명히 "자네들은 나보다 더 큰 일도 할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오순절날 사도 페트로는 말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 자녀들을 위한 것이며 또한 모든 머나먼 사람들, 그들이 얼마이든 주 우리 하나님이 부르실 만큼의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행전 2:39)
성령의 약속과 거기 자연스레 따르는 초자연적 사역/이적/은사 등은 앞으로도 주님 오실 때까지 모든 오가는 세대의 사람들-그들의 수가 얼마이든- 하나님이 부르시는 만큼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란 말이다.
이런데도 선교하러 나갈 때 반쪽 무기만 갖고 나가라는 교회들이 많다. 초자연적 권능은 빼놓고 말씀만 전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권능은 받지도 않은 채 또는 받지 말라면서 말씀만 열나게 전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름의 거창한 선교 표어까지 내걸고서는 그러고들 있다. 요지경 속이다. 아마딜로(armadillo)처럼 든든한 갑옷과 총칼은 주지도 않고 빤쓰바람에 성경책만 들고 전쟁터로 뛰라는 것과 다름아니다.
그런 것은 반쪽 짜리 선교다! 체로 걸러낸 반쪽 짜리 복음이다. 모든 사도들은 다 하나님이 뒷받침해주시는 초자연적 권능으로 사역했다. 그런데 우리가 사도보다 뭐가 더 잘 났다고 무슨 깡으로 권능 없이도 말씀만으로 선교를 할 수 있다고 믿는가? 오히려 지금은 세상이 초기교회 시절보다 더 악하고 더 강퍅하기 때문에 그때보다 더 큰 은사, 더 강력한 권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진 않는가?
물론 투철한 영적 분별력과 함께 말이다.
십일조에 숨은 비밀과 법칙

김삼
아브라함이 드린 십일조는 행위언약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다. 할례와는 다르다. 야콥이 드린 십일조, 그것은 복의 채널을 위한 야콥 스스로의 서원을 통한 언약이었다. 아버지 이짜크에게서 배운 것이다.
하나님은 한때 모쉐를 통해 십일조를 율법화하셨다. 성전이 있을 동안 주로 레비 족의 생계를 위한 배려였으며 동시에 복의 채널을 위한 순종의 교육이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의 첫 행위언약처럼 행위언약을 교육의 방법으로 사용하신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 순종하는 사람은 복을 누리지만 순종보다 억지제사 즉 희생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십일조를 내기 거부하는 사람들은 헌금이 더 쉽다고 생각하나 사실은 반대다. 십일조는 '냄의 법칙'(Law of Giving)에 따라 으레 내게도 되지만 헌금은 여간만 자발적인 정신이 아니면 적당히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가 더 많다.
통계에 따르면 기독교인의 평균 20%만 십일조를 한다. 나머지 80% 교인들은 안 낸다는 얘기다. 미국교회 다수가 십일조를 내고 받는다. 미국교회 재정의 절반 이상이 십일조로부터 온다. 미국 교인들은 예로부터 세계적으로 기부와 자선, 구제를 많이 하기로 유명했다. 6.25 때 한국을 도운 많은 미국 구호품들의 상당량은 십일조와 기부금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판도가 달라졌다. 바나리서치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2002년 수입의 십분의 일을 낸 사람은 전체 성인교인의 3%에 불과했다. 2001년(성인들의 8%)에 비해 62%나 줄었다는 얘기다. 거듭난 교인들조차도 2001년 14%였던 것이 2002년 6%였다.
이것은 테러와 경제 불안 요소 등의 작용도 있지만, 신세대들이 구세대 교인들의 십일조 정신을 따르지 않는다는 얘기도 된다. 또 구세대가 신세대에게 십일조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그 중대한 영향의 하나가 인터넷이다. 인터넷 도처엔 십일조를 반대하는 '반십일조신학'의 글들이 무수히 떠 있다. 안 그래도 교회로부터 부담이 없기를 바라는 그들은 이런 앤티 타이딩(anti-tithing)의 글을 반색하며 반긴다. 그러니 경제 사정이 더 어려운 한국은 오죽하랴.
어느 신학자가 지적했듯 오히려 요즘 교인들은 교회에서 뭔가 받아 내길 원하되, 주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특히 젊은 세대는 그렇다. 그래서 한 목회자는 케네디 전대통령의 말을 빗대어 "교회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주길 바라기 전에 여러분이 교회를 위해 할 것이 무엇인지..."란 식으로 안쓰럽게 교훈하기도 했다.
병행론과 후속 역사
구약시대 레비 족들이 십일조를 받았듯 오늘날 사역자들에게 십일조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상은 6세기에 크게 보급된 생각으로 흔히 '병행론'(parallelism)이라 불린다.
동방정교회는, 젊은 율법사에게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이에게 나눠 주란 교훈에 따라 십일조를 시작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이레니우스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으므로 교회는 구약시대를 능가하는 것을 바쳐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속사도 교부들인 요한 크리소스톰, 퀴프리아누스, 오레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등은 때때로 성도들의 인색함을 꾸짖곤 했다. 크리소스톰은 십일조를 내는 이들을 이상스럽게 여기는 자신의 인색한 교회에 창피를 주기도 했다.
모든 성도가 십일조하기를 촉구했던 구체적인 기록은 585년 프랑스 마송 종교회의 때부터. 교회법 속에다 정식으로 십일조 조항을 박아 넣었다. 그로부터 1000년후 트렌트 종교회의는 십일조를 거부하는 신자들을 파문하기도 했다. 이로 인한 폐단과 문제점이 많았다.
십일조는 '율법'?
십일조가 한때 율법이던 때가 있긴 있었다. 그러나 레비 족 제도가 있기 5세기도 더 전에 십일조가 존재했다. 아브라함도 이짜크도 야콥도 십일조를 했다. 이것은 십일조가 율법을 초월한 법칙이었다는 얘기다.
구약 당시에는 십일조가 가난한 사람들의 구호를 위해서도 적용됐다. 현대교회에 십일조가 없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과연 어떻게 제대로 도울 것인가.주님 말씀대로 가난한 이들은 우리와 늘 함께 있지 않은가? 가난한 사람은 율법을 초월하여 도와야 할 대상들이 아닌가.
신약에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명령도 없지만 십일조가 구약의 다른 율법과 함께 폐지됐다는 구절도 전혀 없다. 주님은 복음서에서 바리새인들의 십일조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이것(인애와 정의)도 저버리지 말고 실천하려니와 저것도 실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인애와 정의가 존속하는 한 십일조도 존속한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또 이로써 구약의 십일조가 새 언약으로도 계속될 것을 암시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카이자르의 것은 카이자르에게
위의, 주님 말씀에서 '하나님의 것'이 무엇이라 생각되는가? 우리가 자발적으로 내는 헌금이라고 생각하는가? 필자의 양심상 생각해 보면 분명히 헌금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또 이 하나님의 것이 구약시대로 종결되고 더 이상은 하나님의 것이 불필요하게 되었나? 사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고백과 표현으로써 헌금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십일조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신약시대에 십일조에 관한 언급이 없다고 하나, 기독교의 신앙의 처음과 모든 것을 마무리하다시피 한 히브리서에 십일조가 재차 강조돼 있다. 한 미국 목회자는 신약시대엔 5중 사역 즉 사도/대언자/목회자/전도자/교사들은 십일조를 받아 생활하도록 히7장에 명령돼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해석한다.
십일조는 복의 채널
십일조를 복의 도구 복의 채널로 보기 시작하는 사람은 덜 드리지 않고 더 드리게 된다. 십일조를 내도 안 내도 하나님이 똑같이 복을 내리신다면 십일조를 내는 사람에겐 불공평한 처사다. 이 점에 착안해야 한다(코린토B 9:7).
우리는 그러시는 하나님이 불공평하시고 차별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비난할 수 없다. 그분은 어디까지나 의로우시며 공평하시며 공명정대하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 주시고 그를 번창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은 복 내리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다(히브리서 6:9-19).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이 복은 크리스토님을 통해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전세계 금융재정 75% 이상을 보유하고 있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보다 더 나은 언약을 가진 우리들은 왜 그러질 못하는가?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말라키 3:10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주실 복을 예언해놨다. 십일조는 넘치고 풍부한 복의 한 원천이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성도들이 십일조를 드릴 때 평소 건강하여 병원에 가는 일도 거의 없었고 의료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 그런 간증을 하는 이들을 많이 봤다. 하나님은 어려울 때 신실한 사람을 더 복 주신다. 십일조를 내고 안 내고는 본인의 자유의지다. 그러나 내는 사람은 엄청난 복을 받는다.
다음 성구를 보자: 루카 6:38, 말3:10-12 잠19:17.
십일조의 영적 대상은 하늘 대사제 크리스토
히브리서 7:8에 따르면, 십일조는 물질 자체는 교회가 받아 처리하나 영적으로는 크리스도께서 직접 받으신다. 예수님은 레위가 아닌 멜키쩨덱을 영원히 계승한 하늘 대사제(대제사장)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하늘 대성전에서 대사제로서 중재하고 계시다. 하나님은 기꺼이 내는 사람을 사랑하신다(코B 9:7). 이것은 헌금과 십일조에 모두 해당되는 말씀이다.
사랑의 표현이자 천국시민의 예의
십일조는 이미 하늘에 속해 있는 천국시민들이 사랑으로 바치는 '하늘세금'이다.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의 몸과 소유를 포함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걸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는 표현의 하나가 곧 그분께 드림이다. 사랑의 원리는 서로를 주면서 자연히 받을 것을 기대한다. 어떤 사랑도 마찬가지다. 부부의 사랑도 마찬가지며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서로 주는 것으로 묶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받지 않아도 아무 손해볼 것이 없으시지만 사랑하는 대상이기에 기대하시는 바가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결정해서 자발적으로 드린다고는 하나 적당히 드릴 때 우리는 자칫 스스로를 속이는 꼴이 된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드릴 것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청지기 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가 최소한 십분의 일로써 그분의 자녀인 위치로 사랑 안에 묶이길 원하신다.
그것은 사랑이면서 복의 묶임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복을 내리시기를 원하신다.
서원행위의 하나
야곱은 하나님께 복을 주실 것을 요청하며 십일조로 서원했다. 우리가 신실한 하나님께 손가락을 걸고 온전히 속해있음을 증명하는 한 가지가 곧 서원하는 것이다. 서원은 율법시대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고 신약시대에도 존속되고 잇다. 바울의 서원이 대표적인 예다. 하나님은 특히 서원에 관해 신실하시다.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인식의 일부 산과 들의 모든 것들, 우리의 모든 소유, 우리의 몸까지도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통해 상호호혜의 원리를 가르치신다.
이 원리는 청지기의 원리와도 통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이 주인이신 그분께로부터 임시로 맡은 위탁물들이다. 아담/하와에게 맡기신 천하와 에덴 통치권이 믿는 우리에게 적용된다.
헌금은 자발적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할 수도 안 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십일조는 하나의 묶임의 틀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부득이한 것이므로 의무적으로 하게 된다. 청지기가 주인에게 드릴 것을 드리고 보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도둑질할 수 있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불가능한 도둑질을 하고 있다. 십일조와 헌물로써 그렇다. 헌물을 우리가 아주 안 내 버릴 수 있다. 그런 교인들이 실제로 있다. 십일조는 어떤가? 율법이란 구실을 내 걸어 안내거나 안 내려는 교인들이 더 많다. 결국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사업이 큰 손해를 보는 것이다.
십일조는 광고 대상이 아니다
어떤 선행도 광고나 자기선전의 대상이 아니다. 십일조나 헌금이든 광고하면 안 된다. 마태복음 6:1을 보라. 헌금을 더 많이 걷으려는 일환으로 주보에다 사람들의 이름과 금액까지 내거는 것은 정말 비성서적이다.
목회자는 다만 현금을 재정/회계부에 넘기고 난 헌금봉투를 일일이 들고 헌금하는 성도의 마음과 소원을 헤아려 밤낮 기도하고 복을 빌어야 한다. 개인의 헌금과 십일조 액수는 일년 상하반기나 4반기 등 정기적으로 본인에게 직접 정확히 보고돼야 한다. 그럼으로써 교회와 교인 간에 신뢰감이 쌓여간다.
끝으로 존 버니언의 2행 대구시 한 편을 인용한다.
한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는 더 많이 낼수록 더 많이 보유했다.
There was a man, some called him mad;
The more he gave, the more he had.
동성애자로서의 헨리 나웬

말년엔 만인구원론에 빠져
김삼
지난 90년대부터 카톨릭은 물론, 한국 개신교계마저 헨리 나웬의 영성적 가르침에 깊이 천착해 왔다. 바로 이 시간에도 수많은 개신교인들과 교계언론이 나웬을 대단한 영성신학자로 부각시키거나 존중하고들 있다. 그의 서적과 글에 감동 받아 펑펑 울기까지 한다.
일찍이 나웬의 영성에 감화받아 본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이런 현상이 퍽 우려스럽다. 대부분 겉으로 나타난 그만 알고 있지 숨겨진 그를 모르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나웬의 영향력을 기독교 작가 C.S. 루이스나 카톨릭의 저명 신학자 토머스 멀튼에 비견한다.
솔직히 말해서, 현 교계 서점들이 나웬의 책을 팔아 남기는 이익이 그 영성보단 비중이 더 크지 않나 싶다. 알고 보면, 나웬은 어릴 적부터 죽기까지 동성애자, 동성애 옹호론자였고, 말년에는 보편구원론 내지 만인구원설을 주장하며 내리막길을 걸어 갔다.
그의 '안식여정-최종일기'(Sabbatical Journey, The Diary of His Final Year)를 보면, 그가 중심 삼는 여섯 주제 중 보편론적 구원사상이 나타난다. 즉 "(로마) 카톨릭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전통적 신념으로부터 "나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집의 문을 열려고 오실 때, 모든 인간들이 예수님을 알든 모르든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썼다.
카톨릭 밖엔 구원이 없다는 믿음도 우리가 볼 때 문제지만, 예수님을 알든 모르든 누구나 구원받는다는 보편구원 사상도 가히 이단적이다. 바로 다름 아닌 로마 교황 요한 파울로 2세 자신이 2000년 12월 6일 성 페트로 광장에서 한 말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그 즈음 나웬은 자신이 봉사하던 라르슈 공동체에서 신자든 아니든 누구나와 '성체성사'를 나눈 까닭도 이것. 그러나 이것은 참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란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또 일기 속에서 자신의 깊은 속비밀에 대한 동성애공포증(homophobia)으로부터 모든 '선천적' 동성애자들과의 강한 결속에 대한 확신으로 전이돼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네덜란드 출신의 석학이자 명문대학교 교수, 카톨릭 사제였던 나웬은 명석한 사고의 작가이자 탁월한 연사였다. 흔히 '상처 입은 예언자'로 불린 그는 훗날로 갈수록 이성 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편이었다. 그의 글을 보면 자신의 정서적인 말들이, 깊이 있는 성경 인용과 성경 풀이를 능가하고 있음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웨인 홀스트가 지적한 대로, 그는 창의적이기보다 기존개념을 대중화시켰다. 자신의 아픔을 솔직히 노출시키는 감정이입 내지 공감대 형성에 뛰어났다. 자신은 해답을 모르지만, 체험과 규명을 통해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식의 제언가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심리학자였다.
나웬은 1932년 화란에서 태어나 1957년 사제서품을 받은 뒤 심리학 연구에 몰두한다. 1964년부터 81년까지는 메닌저 클리닉, 노틀데임, 니메건, 예일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다. 50세를 지나서는 '그리스도의 내리막길'을 좇아 6개월간 볼리비아, 페루 빈민선교를 거쳐 멕시코, 니카라과, 온두라스에서 사역한 뒤 잠시 교수 생활로 되돌아왔다가 말년까지 정신장애우들을 위한 카나다 라르슈 공동체에서 일했다.
나웬은 자타가 시인하는 소극적/비공개적 동성애자였다. 단적으로 마이클 포드가 쓴 전기 '헨리 나웬의 초상'에 명기돼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타고 난 동성애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평생 동성애적 애욕에 내적인 갈등을 겪었지만, 외적인 선행과 인고로써 극복해 나갔다. 그래서 더욱 역설적/반사적으로 사목 생활에 침잠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 믿어야 할 지는 모르나, 1996년 9월 21일 그가 숨지고 난 뒤, 동성애 옹호단체 '의식있는복음주의자들'의 뉴스레터인 '레코드' 96년 가을호는 "지난 4반세기 동안 나웬은 '두 남성들, 또는 두 여성들 사이의 강한 상호 애착에 바탕을 둔 깊은 대인 관계에 대해 옹호적이었다"면서, 1971년 나웬이 "동성애 감정을 지니지 않은 척 하는 사람은 심장없이도 살 수 있는 척 하는 사람과 같다"고 썼다는 글을 인용했다.
매우 불행한 일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타고 난 동성애자'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란 누구나 강한 의지로써 크리스토 앞에 마음 문을 열고 나오기만 하면 고침 받을 수 있다. 스스로 못 말리는 동성애자라고 믿게끔 만드는 것은 성경이나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과 악령들이다. 바로 사탄의 졸개인 '동성애의 영'(spirit of homosexuality)이 그렇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나웬이 자신은 동성애자로 태어났다고 믿기 시작한 시기는 그가 사제가 되고 싶다는 '소명'을 받은 시기와 엇비슷한 때였다. 그는 고미다락방을 어린이 채플로 개조하기까지 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터지고 있는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배상 소송들의 배경을 보면, 전통적으로 다수의 사제들에겐 동성애/남색의 악령과 악습 및 그 저주가 맥맥히 이어지고 있음을 간파한다.
말하자면 나웬은 이 점에서 평생을 악령에게 속아 산 셈이다. 동성애는 (비록 어릴 적부터라고 해도) 동기를 막론하고 악령의 장난과 자신의 욕정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며, 거기 마음을 두는 한은 악령에게 조종 받는다. "남자들도..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롬 1:27).
이 점에서 그가 '상처' 받은 것이 있다면, 사탄과 그 졸개들에게 상처 받은 것이다. 그것은 크리스토의 구속과 해방사역에 의해 치유 받았어야 하는 부분이다. 일생을 두고 끼고 있을 필요가 없는 상처다. 거듭난 이는 모든 것에 변화 받은 새 피조물이다. 옛 사람과 구습을 버린 존재가 중생인이다. 다른 모든 죄와 욕정과 마찬가지로, 동성애도 버린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다.
동성애 애욕 하나를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서야 무슨 깊은 영성이 나오겠는가? 아니 '영성'이란 말 자체가 카톨릭에서 나오지 않았나? 거기 개신교인들이 목을 맬 필요가 뭔가?
동성애 애욕 하나를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서야 무슨 깊은 영성이 나오겠는가? 아니 '영성'이란 말 자체가 카톨릭에서 나오지 않았나? 거기 개신교인들이 목을 맬 필요가 뭔가?
전술한 포드에 따르면, 나웬은 생애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더욱 모종의 애욕을 느낀다. 독신자인 사제여서인지 동성애자여선지, 정서적 아픔과 애정과 개인적 관심, 우정을 향한 갈구를 토로하곤 했다. 그는 늘 대중의 관심에 굶주렸다. 관심과 주목의 주 대상이길 원했다. 전세계에 친구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었고 한밤에도 전화를 걸어 외로움을 호소하곤 했다.
신체적인 접촉도 자주 갈망했다. 한 번은 연설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 친구에게 포옹해 달라고 황급히 간청했다. 그 친구는 훗날, "그가 격렬하게 내게 매달려 왔고 나도 꼭 껴안아 줬습니다" 라고 회고했다. 인정이 그리웠던 그에게 일말의 연민이 가는 대목이다.
이러한 그를 두고 포드는 나웬의 동성애적 바탕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그의 인간됨의 복잡미묘함과 고뇌를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썼다. 메닌저 클리닉에서도 그는 자신의 '장애'이자 이겨내야 할 '십자가'인 동성애적 성향과 씨름해야 했다. 반면, 하버드에서는 동성애 학생들을 엄하게 대하면서 "동성애는 악의 존재 상태"라고 일러줬다. 맞는 말이면서도 자기 위선에 대한 내면적 갈등을 겪었음이 틀림 없는 대목이다.
그는 수많은 동성애자 친구들과 사귀면서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공개하고픈 유혹과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일부 친구들은 카톨릭 작가와 신학자로서의 그의 명성에 치명적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말렸다. 생애 말기로 다가갈수록 그는 남녀 동성애자들에 대한 옹호의 목청을 더욱 높여 갔다. "그들은 기독교공동체에 고유한 소명을 갖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아마도 그가 더 살았다면 동성애 연구에 관한 중요한 저술을 했을 것이라고 포드는 미뤄 말했다.
나웬은 자신의 '성적 오리엔테이션'을 사람들이 알고 그를 배척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포드는 말한다. "그 엄청난 정서적, 영적, 신체적 부담이 그의 조기사망에 기여했을지 모른다." 나웬은 지나칠 정도로 손이 넓어 수많은 친구들에게 여러 가지 이유를 달아 돈과 꽃, 선물을 자주 보내곤 했다. 그러나 일부 친구들은 나웬의 강요 탓에 부담이 커 선물을 돌려 보내곤 했다.
친한 친구 네이턴 볼('라르슈 데이브레이크' 대표)도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둘의 '플라토닉 러브' 관계로부터 슬슬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나웬은 한동안 의기소침에 빠져 정서불안증 치료를 받아야 했다. 나웬의 글과 말이 호소력이 있던 주된 까닭은 이런 깊은 내면적 정서와 고통을 드러내어 말했기 때문이다. 책 '사랑의 내적 음성'에서 그는 이렇게 내리읊는다.
"우정은 당신의 큰 고통의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너무나도 바라기에 때로는 참된 친구를 찾아 자주 자신을 잃곤 합니다. 당신이 바라던 우정이 구체화 되지 못했을 때 또는 큰 기대를 걸었던 우정이 지속되지 못했을 때, 많은 경우 절망적이 돼 버립니다."
나웬의 경우 위 방정식의 '우정'은 '동성애'로 대입될 수 있다고 봐진다. 우정으로 포장된, 우정의 얼굴을 가진 동성애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가 정신장애우들을 그처럼 피부에 닿게, 살갑게 돌봐 준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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